Lined Notebook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안토니오 부에로바예호

by 리비 :)

* 이전글을 백업합니다.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안토니오 부에로바예호 지음

만약, 정말로 만약 내가 연기를 하게 된다면, 아마 그 시작은 이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던 희곡이다.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부에로바예호의 작품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이 모인 학교에 이그나시오가 전학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희곡 속의 맹인학교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카를로스와 연인 후아나를 비롯한 재학생들은 불편함 없는 생활을 누리며 자신만만하게 생활하고 있다. 즐겁고, 밝고, 아름답다. 이들은 이 학교에서만큼은 통행에 어떤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보지 못 하는 '빛'에 대한 갈망도 없다. 

어느날, 이 천국같은 곳에 이그나시오라는 이름의 전학생이 온다. 이그나시오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불행을 깨우치라며 학교에 파란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점점 이그나시오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리고 연인 후아나마저 이그나시오에게 빠져들자, 학교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카를로스는 불안에 휩싸인다. 카를로스와 대립을 벌이던 이그나시오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작품 전면에 나온 감각은 바로 시각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소리다. 본다는 것이 사실여부와 상관 없을 때도 물론 있지만, 어떤 사건을 목격한다는 것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그나시오와 카를로스는 모두 시각을 가진 적 없다. '본다'는 행위가 허락되지 않은 존재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된 존재들이다.

하지만 둘은 차이가 있다. 보는 행위의 결핍을 느끼는지 여부다. 이그나시오는 시력이 없음에 결핍과 목마름을 느낀다. 카를로스는 보는 자들 역시 어떤 장애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 인물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기준선의 필요성을 느끼는가, 느끼지 않는가. 이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인물 설정이다.

카를로스의 연인 후아나를 비롯한 나머지 맹인학교의 학생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역시 맹인인 학교장인 돈 파블로와 정상시를 가진 아내 도나 파블로 역시 카를로스의 인격을 형성했거나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도나 파블로는 시각을 가졌으나 스스로의 의지로서 시각을 활용하지 않는 인물로 극의 전체적 메시지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 한다.

이 극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한 인물처럼 표현될 수 있는 카를로스가 사실 현명한 존재일 수 있다는 설득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틀림없이 다른, 편협하다 지적할 수 없는 현명, 다수를 지키기 위한 1인의 선택이 필요한 상황 속 무게감이 녹아날 수 있는 캐릭터라서 매력적이다. 때문에 카를로스는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모자란 캐릭터가 아닌,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 속 리더 캐릭터로 표현될 여지가 남는다. 카를로스가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럴 자신이 있는가. 작가는 카를로스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상시를 가진 도나 파블로다. 도나 파블로는 앞이 보인다. 카를로스와 이그나시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그리고 맹인학생들 사이에 감도는 위화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맹인학교의 분위기에 완벽히 동화돼 있는 인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기회를 가진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헤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벼려낼 것을, 바로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작가는 지문을 통해 강조한다. 카를로스를 위시한 맹인학교 학생들은 생활에 만족한다지만, 대화할 때 절대로 시선이 맞지 않는다. 무리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절대 알 수 없지만 위화감이 드는 이 불편함이다.  

이 희곡을 갑자기 들고 나온 이유는 최근 700만 관객수를 돌파하고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알려진 변호인의 스토리텔링과 다소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 참고로 부에로바예호는 오랜 옥살이를 끝내고 나와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블로그의 정보

심심해, 리비

리비 :)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