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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과 동물원 | 올리비에 라작

by 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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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과 동물원> 올리비에 라작 지음

인기척이 나면, 누구나 그 방향을 쳐다본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호기심이다. 인간이 가진 호기심 중 하나로는 엿보기 심리가 있는데 백성들의 세금감면을 위해 알몸으로 말을 탄 고디바 부인을 훔쳐봤던 재단사 톰은 그 벌로 장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도 전해지듯, 여타 호기심과는 다르게 엿보기 심리는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가벼운 엿보기 심리가 공인된 경로를 통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TV 드라마, 영화,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이 엿보기 욕구의 해소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TV 드라마와 영화를 기록하는 카메라는 관객들의 시선을 반영한다. 배우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관객이나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관객들은 마치 타인의 삶이나 세계를 엿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엿보기라는 행위가 터부시 되어 왔던 과거와 달리, 엿보기 심리는 현대에 들어와 대중문화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허구적인 인물들의 삶을 주로 엿보던 시대를 지나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마이크로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근황이나 생각에 대해 올릴 수 있으며, 자신을 감추고 타인의 생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나의 사생활을 제공하는 동시에 타인의 생활이나 근황을 공식적으로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 문화는 엿보기 심리의 표면화를 뛰어넘어 본능의 발산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엿보기 심리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의 허구적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던 시대를 지나,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실제 그들의 성격을 반영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의 유행을 이러한 맥락 아래 해석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MBC의「무한도전」이나 KBS의「1박2일」이 가지는 내러티브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다.「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을 반복한다는 내러티브만을 가지고 있었던 초기에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것과「1박2일」이 반복되는 ‘복불복’의 내러티브에 갇힌 후 받아들여야 했던 시청률 정체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설정한 특정 상황에서 등장인물이 취하는 선택과 행동을 지켜보며 즐거움을 느낀다. 따라서 PD들은 각 인물들의 성격을 암시하는 캐릭터의 확립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수다스러운 캐릭터가 있으면 말을 잘 못하는 캐릭터도 있다. 선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악마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도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선택과 행동이 진열된 인간 진열장을 구경하며 즐기는 것, 원초적인 엿보기 심리를 충족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립된 캐릭터들은 조작된 캐릭터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실제 성격이 반영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창조된 캐릭터들은 현실 속에 있는 비슷한 인물들보다 훨씬 과장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사실적인 표현을 위한 꾸며진 허풍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대 문화의 특성을 올리비에 라작은 저서「텔레비전과 동물원」을 통해 인종 전시회, 리얼리티TV 속의 동물원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또한 우리 모두는 현실을 제작하기 위해 현실이 아닌 것들을 이끌어오는 상태와 여기에 길들여져 가는 현대인들에게 사색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의 왜곡에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관음증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관음의 대상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이를 분출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에서 인간의 행위는 앞서 밝힌 관음증적인 시선의 해소에서 멈추지 않고 관음의 대상에게 간섭한다. 오디션프로그램에서의 국민 참여 투표결과의 반영은 이러한 시선을 공적으로 풀어낸 사례이다. tvN의「오페라스타」와 M.Net의「슈퍼스타K 시리즈」그리고 MBC의「우리들의 일밤, 신입사원」에서의 시청자 투표는 이들의 노력과 그 결과물을 지켜보고 그 판단을 내리도록 자극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판단에 의해 탈락자가 배출된다. TV 프로그램의 투표라는 인정된 수단을 통해 일종의 감시와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감시와 처벌은 공적인 수단을 벗어나 인터넷 상에서의 의사표출로도 이어진다.「슈퍼스타K2」의 출연자 중 하나가 프로그램 상에서 했던 행동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일이 있다. 이는 감시 속에서 발견한 이기적인 행동을 한 출연자에게 내리는 관람자들의 처벌이었다. 또한 다양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에서 활약하는 인물의 캐스팅에 대한 시청자들의 간섭을 통해 우리는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사적인 수단을 통한 감시와 처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감시와 처벌」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유순해졌으나 이면에는 한 층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기 시작한 권력을 지적한다. 감시나 처벌의 주체로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는 정말 감시와 처벌에서 자유로운 존재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은 그들의 주도권을 우리에게 넘겨준 것인가. 우리는 거대한 권력에 의해 감시당하는 사회를 지나 감시의 처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가 감시와 처벌의 주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쓴 글, 지하철에서의 어떤 행동, 방송에서 우연히 주어진 인터뷰에서의 말 한마디로 인터넷과 같이 사적인 감시체제에 의한 감시와 처벌이 이뤄진다.「감시와 처벌」은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일망감시체제, 일명 파놉티콘을 언급하며 우리가 있는 곳은 무대 위도, 원형극장의 계단 좌석위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감시 체제 안에 있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만들어지고 규율을 훈련시켜 거대한 권력에 복종하는 근대적 개인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고 있다. 이러한 권력이 이제 정부와 같은 비교적 선명한 권력에서 개개인들에 의해 이뤄지는 사회적 낙인으로까지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 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장된 것이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리고 광범위해진 권력만큼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자유는 축소되었다.  권력이 눈에 띄게 나서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처벌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의 본능이다. 엿보기 욕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대중문화는 영화와 TV드라마,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같은 습관적 관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습관적 관음은 관음의 대상에 대한 간섭, 이를 넘어 감시와 처벌로까지 이어졌다. 현재사회에서 나타나는 비물질 파놉티콘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엿보기 욕구를 이대로 용인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법은 다시 인간의 본능으로 돌아간다. 몇 시간이면 최소한 생존을 위해 두 다리로 서고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는 동물과 다르게, 인간이 두 다리로 서고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오랜 성장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 인간은 공감의 능력을 타고 난다. 타인의 생각, 감정, 행동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인간은 험난한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의 능력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공감의 능력에 주목하지 않았던 인류는 문명의 실패로 인한 문제점들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상실된 공감능력의 회복이다. 공감의 본능을 주목하는 것, 감시와 처벌 전에 나도 저 상황에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는 개인의 각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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