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높고 푸른 사다리 | 공지영

by 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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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나는 그 종소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새벽하늘, 푸르스름한 빛 속에 종탑이 우뚝 솟아 있고 종소리가 퍼져가고 있었다. 새벽의 찬 기운을 피하려고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올려다보면 그것은 이 지상에 유일하게 허락된 영원에의 통로, 야곱이 보았다는 그 사다리가 소리를 차고 쏟아져 내리는 듯 했다. 만져볼 수도 없고 붙들 수도 머물 수도 없으나 분명히 거기 있는. 그런.

사랑.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딱 이 문단이 생각날 것 같다. 은은하게 펴져가는 것. 찬 기운을 피해 발견한 유일한 통로, 만져볼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지만 분명히 거기 있는. 이 문단을 읽는데, 이 주인공에게 다가올 다양한 사랑과, 아픔과, 그리고 이야기들이 마음에 닿는 느낌이었다.

감성적이다. 공지영 작가의 세계관과 가족관을 모두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책장을 펼치면 누구나 쭉 읽어내려갈 수 있다. 종교와 사랑, 익숙한 소재를 쉽게 풀었다. 인생 속에서 주고 또 받았던 사랑을 되새김질하도록 만든다.

"그의 웃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구로 쓰자면 흐드드득 흐드드득, 음계로 쓰자면 두 옥타브 정도 고음이었던, 리듬으로 치자면 8분 음표가 네 마디쯤 이어지는 그런.

(중략)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요? 토마스 수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병실에서 자기는 아파서 물도 삼키지 못 하면서 제가 친척들이 사 온 주스며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기를 그리 좋아하셨는데요."

"예전에요, 요한 수사님,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실 때 그러셨어요. 언제든 엄마는 내가 옳다고 하셨죠. 사춘기 들어서 제가 한번 엄마한테 물었죠. 엄마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엄마는 맨날 내가 옳다고 하잖아? 하니까 엄마가 그러셨어요. 그러니? 미안하구나. 하지만 난 언제나 네가 옳은 거 같아. 난 솔직히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안젤로. 하지만 혹여 네가 잘못한다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해주고 싶어. 그래야 네가 정말 잘못했을 때 혼자 잘못한 듯 외로워지지 않을 거잖아...... 저 그 후로 엄마 말 많이 생각했어요. 내가 미카엘 수사님한테 해줄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같은 편이 되어주고 싶어요. 혼자만 잘못한 것 같이 너무 외롭지 않게."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나는 가끔 안젤로의 이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워질 때면 혼자, 울었다.

이 책은 '사랑'이 대체 뭔지 고민하게 한다. 무의미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 당신의 의미를 나에게서 찾고, 나의 의미를 당신에게 찾는 것. 가족 간에도, 신에게서도, 이성에게서도 모든 종류의 사랑이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준다.때로는 위로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하지만 외로워질까봐 잘못에 동참하기도 하고, 같이 웃고, 같은 것을 보고, 그러나 다른 말을 하고, 결국 다른 생각을 하나로 합쳐 더 좋은 방향을 찾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의미가 된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지만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들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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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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