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그래도 사랑 | 정현주

by 리비 :)


산책하기 알맞은 날이면 좋겠다고, 여자는 그들의 내일에 대해 말했다. 남자는 웃으면서 돌아섰다. 전화번호는 묻지 않았다. 반드시 만날 것을 아는 사람에게 열한 자리 숫자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과 함께 낡아질 것을 걱정하지 않고 깊어지면 된다.' 하루하루 깊어지고 편안해지며 이제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게 된 남자가 옆에 있어 여자는 고마웠다.

아픔을 잊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간다. 단단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말이다. 있든 그대로 세상을 만나면 무서져 버릴 까봐 겁이 나서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물었다.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었다. 혼자 상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생각이 쉽게 나쁜 쪽으로 흐른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생 안전한 새장 속에만 있었다. 혼자 나는 연습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단 한 번도 스스로 날아본 적이 없이 어른이 되었으니 날개가 굳었을 것이다.

그런데 겁도 없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일에 파묻혀 하루 이틀은 더 버틴다고 해도 결국은 이 믿어지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그땐, 어쩌면 좋을까.

창 밖으로 아파트가 보인다. 깜깜한 가운데 홀로 불을 켜둔 사람이 있다. '누군가 또 나처럼 슬픔에 잠 못 들고 있나 보네.' 그 사람이 가여워 여자는 울었다. 이별 때문에 우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또 스스로를 속였다.

너를 사랑했어. 하지만 늘 외로웠지. 노력할수록 더 외로웠어.

지금도 너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나도 이젠 사랑을 받고 싶어.

어지러운 것이 가라앉으면 앞이 보일 것이다.

창문을 열자 맑은 공기가 들어왔다. 깊게 숨을 쉬는데 라디오에서 노래 하나가 흘러 나왔다.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우리 아기새가 이 노래를 참 잘 부르는데.

늘 길을 잃는 여자 때문에 남자는 때로 답답하고 자주 걱정했을 것이다.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사랑 속에서도 그랬으니까.

혼자 설 수 있을 때, 더 현명해진 다음에 만났더라면 남자 혼자 인연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아픈 기억, 좋은 기억으로 덮으면서 살자, 우리.

그 밤, 마주 선 두 사람의 어때 위로 하얗게 눈이 쌓였다.

여자가 남자를 밀어낸 것은 더 이상 이별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별하기 싫어서 여자는 사랑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한 남자가 찾아와 자꾸 여자의 마음을 두드렸고 그녀는 마음이 열릴까봐 더 숨고 도망을 쳤다.

이런 책은 많이 읽지는 않지만... 지하철에서 읽다가.

교수님 중 한 분은 20대 넘어서 읽는 소설(등등)은 지적 능력이 낭비라 하셨다. 하지만 이따금 읽는 이런 책이 숨돌릴 시간을 준다면 허비까지는 아닌 것 같다는 자기 합리화를 조금 했다.

나쁘게 말하면 감정팔이. 사실은 감정을 잘라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끔은 감정을 되새길 수 있도록 구성된 글이다. 가끔은 간접경험이 되기도 한다. 그거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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