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2]

by 리비 :)


스포일러 있음, 유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소설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야기만 잘 따라가도 성공적인 관람이 될 듯한 멋진 영화다. 친구의 훌륭한 취향을 확인하게 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친구의 추천목록을 따라가면 후회가 없다. 셜록, 세나... 모두.) 이 조용한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든 스파이물이다.

이런 소리를 늘어놓아도 내가 올릴 포스터 한 장에 신뢰감이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 잘 안다.

문제의 '그'가 나와있는 이 포스터. 절대로 베니가 나왔다고 내가 '이 영화 완전 짱임!' 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세요. 信じてみ!

 
이 영화는 당시의 모든 것을 재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마치 그 당시의 기록물을 디지털라이징해서 상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함인지 노이즈가 약간씩 나타난다. 영화의 색채는 전체적으로 회색빛을 띤다. 이 영화가 타 스파이물에 비해 시원시원한 액션활극이 없는 편이다.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다만 부분부분 무섭도록 빠~알간 피가 나온다. 대신 주구장창 기록하고, 분석하고, 추리하고, 함정을 파는 사무직이 가득하다. 액션으로 모든 첩보활동이 설명되는 영화 속의 스파이가 아닌, civil servant, 공무원으로서의 스파이가 러닝타임 내내 펼쳐진다. 그래서 이 생기없는 회색이 참 잘 어울린다. 회색과 적당한 노이즈는 냉전시대의 런던과 참 잘 어울리는 설정이다.

공무원들의 일상을 가지고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끝나기까지 '큰 것 한 방'을 먹이려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이 이야기 자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듯,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긴장감을 조금씩 더해갈 뿐이다.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스마일리와 페어게임을 펼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추리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범인 맞추기' 강박관념은 던져놓아도 된다. 단 어떤 소품이나 단어를 토대로 과거의 회상이 이어지거나 이야기가 진행되니 추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흐름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위치크래프트, 안전가옥, 라이터, 그림, 칼라, 뭐 이런 단어들.

전화기소리, 타자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발걸음 소리, 열차 소리, 파리 소리, 시계 소리, 소매자락 스치는 소리, 구형 자동차의 창문 내리는 소리, 유리창을 타고 바람이 넘나드는 소리 등 잡다한 소리들이 유달리 크게 들어간다. 그리고 대사의 전달도 공간감이 사는 편이다. 장관이 타르에게서 전화를 받고 스마일리에게 이중첩자가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처음에 둘을 멀리 잡는다. 이 장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실내 대화라는 점을 강조하듯 울리게 녹음되어 있다. 영상과 이야기가 조용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소리와 음향에 집중을 좀 한 듯 하다.

체스말의 변화를 통해 스마일리의 의중을 어렴풋 읽을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컨트롤은 체스말에 사진을 붙여 이중첩자를 찾으려 했다. 컨트롤의 거처에서 스파이 후보들을 체스말로 세워둔 것을 발견한 스마일리는 이 사건에 칼라가 연관되어 있음을 직관적으로(아마도) 눈치채고 칼라를 오렌지 킹으로 새롭게 새운다. (나머지 말은 블랙이다.) 컨트롤의 예상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시작부터 진전을 보인 그의 작전이 성공할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극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스파이의 윤곽이 어렴풋 드러나고, 피터는 별별 꼴을 다 보다가 '이 놈이 범인이야!' 하며 두 번 폭발한다. 그럴 때마다 말리고 처리하는 것은 스마일리. 둘의 관계도 재미있다. 피터가 원작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로 표현된 점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스마일리는 그를 신뢰하고 그는 스마일리로부터 소소히 배우며 서커스 내에서 성장하는 관계로 나오는 듯 하다. 스마일리는 용의주도하고 꼼꼼하지만 과거에 실수도 저지른 적이 있는 인물이다. 극이 끝나는 순간, 대중들의 박수와 갈채가 쏟아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완벽하지 않다. 그는 정말 완벽하게 이중첩자를 파낸 것일까?

어떤 의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가 숨어있을 법한 장면 하나하나는 놓치기 싫은 보물이다.


+ 베니의 드레스핏. 그리고 그 와중에 피터길럼.

이 양반 옷태야 셜록에서 많이 구경했지만, 이 극 속에서도 구경할 것이 넘친다. 트렌치를 여유있게 걸친 안에 입은 흰 셔츠, 타이, 행커치프, 베스트, 재킷까지 모두 차려입고 나온다. 타이 색, 디자인이 참 예쁜 것은 당연하다. 마음같아서는 다 캡쳐라도 해놓고 싶은데, 그럴 힘이 없네...

그나저나 베네딕의 연기는 셜록 때도 신기했지만 이 극에서도 신기하다. 원래 저런 연기가 쉬운건가...? 싶을 정도로 천연덕스럽다. 연인과 헤어지고 펑펑 우는 장면도, 길가다가 우산 쓴 여자에게 눈길이 살짝 가는 장면도, 서커스 내부에서 혼자 문서 훔치면서 덜덜 떨다가 아닌 척 하는 장면도, 돌아온 탕아 타르에게 강펀치를 날릴 때도, 운전하는데 파리가 날려서 그걸 쫓는 장면도... 다 그냥 어울린다.

스마일리가 If you are caught, you can't mention me. sorry, but you are alone.이라고 말했을 때도 피터는 그냥 Last November? 하고 지시사항을 확인할 뿐이다. 시키는대로 다 해서 멋지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할 일이면 어떤 책임이 따르더라도 한다는 마음가짐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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