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1408 | 2007

by 리비 :)

#글을 백업합니다.
##스포일러 안 쓰려 노력했으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아집으로 똘똘 뭉친 미스터리 호텔 탐험가 엔슬린의 이야기, 1408. 무서운 영화를 보고는 싶고, 보러 갈 사람은 없어서 결국 혼자 보러 갔던 영화인데, 너무 무서워서 나오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안움직여서 못나오고 끝까지 봐야만 했던 영화다.

실생활에서 혼자있는 ‘내’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공포들을 총집합 시켜놓은 공포영화로, 무기로 사람을 해하는 장면은 다른 영화에 비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장면의 대부분은 투숙하게 되는 방에서 일어났던 사건수첩이 비춰지는 몇 분 정도. 하지만 영화는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엔슬린은 귀신이 나온다거나,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에 가서 관찰하고, 오컬트 글을 쓰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메일은 언제나 ‘우리 집에 귀신이 있다!!!’라거나 ‘우리 호텔 몇 번 방은 난리다!!’라는 메세지가 가득하다.

그가 원래부터 오컬트 작가였을까? 그 전에 썼던 소설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 오컬트 작가가 됐다. 사후세계에 갑작스레 관심을 가지게 만든 그 이유가, 바로 엔슬린이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상처다. 그가 공포에 대항해서 저항하는 부분에 대한 이해는 여기서 시작된다.

엔슬린이 들어간 1408이라는 방은, 일상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생활 용품이 공포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집요하게 건드리는 공간이다.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끊이없이 난도질 당하는 엔슬린은 그 자체로만도 탈진 상태에 이르는 공포를 체험하게 되고, 그것은 관객에게도 시각적으로 전이된다.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을 믿고 싶지 않아서 도피하고, 그 도피행각의 결과로 발생하는 책임이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일시적인 안도감을 느끼지만 결국 마음의 짐으로 남게 되면서, 현실의 그 어떤 것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모두가 아는 진리. ‘현실 부정’에 따라 평생을 따라다닐 짐에 대한 공포다. 엔슬린이 현실을 회피하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면 많은 희생자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며 죽어갔는지가 이해된다.

그러한 희생자들과 엔슬린이 다른 점은 단 하나. 대처방법이다. 공포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아챈 후, 엔슬린은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존재에 대해 분노하고 대면을 감행한다. 이 용기가 자신을 1408호의 공포와 마음의 짐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의 모습은, 그런 과정을 겪고 성장하게 된 한 사람의 모습을 대변하는 좋은 장면이다.

누구나 나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안 좋은 기억들은 트라우마가 되어서 시시각각 당사자를 괴롭힌다. 그러한 트라우마의 존재를 정면으로 조명하는 심리 공포물 영화로써,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고 부정하고 다시 곪고, 그 곪음이 터지고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공포라는 껍질을 쓰고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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