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Hawking (BBC, UK), 2004

by 리비 :)

Hawking / BBC


어렵고 먼 이야기를 재미있고 극적으로


2시간 가량의 영화를 본 듯한 꿈을 꾼 적이 있다. 탐정물이었다. 범인이 나오자마자 일어났다. 글로 쓰면 단편소설 하나는 나오겠다 싶어서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용만 있고 극적으로 풀어쓸 수가 없었다. 꿈에서 본 이야기도 이리 어려운데, 어렵고 먼 세계 이야기를 재미있게 극적으로 꾸미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신학자고 과학자고 시작에 대한 관심들은 참 많다. 이 사람들은 인류의 시작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 우주의 시작을 궁금해 한다. 빅뱅이라는 우주대폭발로 우주가 생겨났다는 이론은 이제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반화된 이론 중 하나다. 그런데 세상에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가 어디있어? 이 당연한 것을 설명한 사람이 진짜 천재 맞아?


이게 당연하지 않았던, 빅뱅이론은 만화같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호킹도 있었다. 2004년 방송된 BBC의 단편극, 호킹이다.

There was no beginning of the universe

"There was no beginning of the universe. Past, Present, Future, The universe has always exist and it always will."[각주:1]

당시 사람들은 우주의 처음과 끝은 없다고 생각했다. 호킹은 그 시대의 대학원생이었고, 근육이 약해지는 병으로 시한부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교수인 데니스를 찾아가서 부탁한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연구를 끝낼 수 있는 주제를 정할 수 있도록. 하지만 교수는 그 부탁을 거절한다.


한편 호킹은 학교로 돌아간다. 이 장면 재미있었다. 물리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고,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큰 발견은 원자폭탄이라는 말에 대해, 펍에서 호킹과 친구들은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에 발끈한 한 학생이 제안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여자 꼬시기!

제 시간은 7시 반인데, 그쪽 시간은 몇시죠?

호킹은 여자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시간은 7시 반인데, 여자의 시간은 몇 시냐며 묻는다. 그리고 상대성이론을 짧고 간단하게 설명하며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여자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다.


이 장면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를 간단하고 재미있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호킹이 읊는 대사의 양이 상당히 많고, 대사의 표현은 어렵지 않지만 내용이 무거워서 집중이 잘 안 된다. 하지만 호킹을 괴짜로 봤던 여성의 감정이 관심과 호감으로 바뀌는 것을 표현하는 여배우의 눈빛을 중간중간 잡아주고, 이론의 가정 상 중요한 부분은 여성 대사로 따로 한 번 더 처리하면서 이해도를 돕는다. 오~ 편집 좋다!


뿐만 아니라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호킹의 처지를 다시 부각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베니가 '시간은 중요해요.'라는 대사처리를 하며 짓는 표정이 참 좋았다. 디렉션이 있었는지, 아니면 베니의 연기인건지. 디테일 살아서 좋다.


호킹은 담당교수인 데니스와 로저 펜로즈라는 천재 이론물리학자 (겸 수학자)와 식사를 같이 하게 된다. "There was a young lady named 'Bright' whose speed was faster than light. She set out one day, In a relative way and returned on the previous night."[각주:2] 같은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재미있다고 웃는 사람들이다. (이게 웃겨? 난 그냥 뭔 말인지 모르겠어ㅡ_ㅡ) 그 자리에서 그는 호일의 이론에 허점이 있음을 생각해내고, 학교로 돌아와 호일의 새로운 논문이 틀렸음을 하룻밤동안 흑판에 계산해낸다. 그리고 영국왕립학회에서 호일의 계산이 틀렸다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무시한다. 그런 그에게 데니스 교수는 남의 틀린 계산을 들춰내기보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을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한다.

진짜 펜로즈는 이렇게 생겼어요?

호킹은 우연히 로저 펜로즈의 블랙홀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다. 태양같은 큰 별이 점점 응축되면 별의 밀도는 아주 높아진다, 계속 응축되어서 밀도가 높아지면 중력이 커진다.[각주:3] x축에 공간이, y축에는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들어간 2차원 평면에 그려진 특이점, 한 점에 응축되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블랙홀이다.[각주:4] 이 내용을 잘생긴 로저 펜로즈 역의 톰 워드의 잘생긴 얼굴과 호킹의 과학적인 의견 일치를 극적으로 그린다. 여기에서 그는 블랙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여기 타는곳은 1번, 캠브리지 승강장이죠.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고 호킹의 생활은 불안정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호킹은 캠브리지 행 열차에서 노부인을 만난다. 

I love you deeply forever!

반대편 열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탄 열차가 출발했다고 착각했다며, 캠브리지로 가는 1번 승강장이라서 항상 뒤로 간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서 호킹은 영감을 얻는다.

출발 직전의 열차에서 내려 로저 펜로즈를 불러세운 호킹은 승강장 바닥에 분필로 로저 펜로즈가 그렸던 2차원의 시공간 평면을 그린다. 그리고 시간의 방향을 바꿔 블랙홀의 반대편에도 같은 특이점을 그린다. 붕괴의 역반응인 폭발, 빅뱅을 설명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진짜 호킹은 천재였구나 싶은 경외감이 들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두 번째는, 이렇게 쉽게 과학을 설명해주는 드라마라니, 참 좋아서다. 음악은 아름답고, 오디오는 기차 경적만 살리고 호킹의 얼굴은 살짝 아웃포커싱으로 처리한 화면 편집도 절묘하고... 이 드라마는 화면과 편집이 진짜 예술이다.


The leftover heat of the Big-bang,
The 3 degrees that hasn't cooled 
yet

"This noise, this god damn beautiful heats, it connects! It is the sound of the beginning of the time. The leftover hear of the big-bang, The three degrees that hasn't cooled yet. It is everywhere. It is all around us."[각주:5] 아노와 로버트의 말이다. 우주가 맨 처음에 시작되었을 때의 에너지, 그 복사열이 지금도 우리 주위에 있단다. 어딜 가나 그 열은 존재한단다. 아, 신기해! 이 대사 좀 감동스러웠다.

이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방송녹화장면이 있다.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의 인터뷰다. (물론 진짜 인터뷰는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다.) 이들은 빅뱅 후에 남은 우주 배경 복사에너지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시작된 빅뱅이론을 호킹이 설명해냈고, 이에 대한 실제 증거를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발견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호킹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과학자의 일대기를 그렸다. 과학 이야기에 전신마비를 가진 천재 과학자 호킹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입히고, 그리고 그 안에 호킹과 제인의 사랑이야기도 집어넣어 흥미롭게 만들었다. 이러니 참 잘 만들었다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감동도 있고, 앎도 있고, 재미도 있고^^


MBC의 '절정'과 함께 BBC의 'Hawking'이 일대기적 드라마 중에서는 참 좋다.


물론, 베니가 어리게 나오고 (그래요, 8년 전이니까요.) 호킹박사와 정말 닮은 것 같다는 점, 어딘가 잘생기게 나왔다는 점도 좋다. 좋다니까?

 

여담1.

그런데 제인과 이혼한 호킹...은 좀 충격이었다. 저렇게 좋아해놓고 이혼한거야? @.@

 

  1. "우주의 시작이란 없는거야. 과거, 현재, 미래, 우주는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네." [본문으로]
  2. "브라이트라고 빛보다도 빠른 젊은 여성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녀는 상대적인 하루를 시작했는데, 어제밤으로 돌아가 있었죠." [본문으로]
  3. 솔직히 이 내용 별로 이해는 안 가는데, 중력이 별의 중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질량은 질량'중심'점에서 모두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반지름만큼 힘이 뚫고 나오는 동안 중력이 어느정도 약해진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럼 반지름이 작아질수록 별의 표면에서 느낄 수 있는 중력은 커지겠죠. 태양같이 무거운 별이 계속 작아져서 엄청나게 작아지면-중력붕괴해서 진짜 진짜 작아지면- 작아진 태양 근처를 지나가는 것들은 중력의 영향이 커지다 못해 중력 영향권에서 탈출할 수 없어진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4. 특이점, Singularity랍니다. 수학에서는 미분가능하지 않은 점, 함수값이 무한이 되는 변수값이라고 합니다. 이론물리학에서는 질량이 일정한데 부피가 0에 가까워져서 밀도가 엄청나게 높아졌을 때 생기는 블랙홀을 말한댑니다. 특이점이라는 용어가 수학에도 있는 것을 보면, 이론물리학에서도 일종의 함수인 것 같습니다. 함수면 또 미적분이 빠질 수 없죠, 아마도 연속성에 관련된 문제인가 봅니다. [본문으로]
  5. "이 소음, 이 엄청 아름다운 잔열은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시간 시작의 소리예요. 빅뱅 후에 남겨진 열기죠. 아직 채 식지 못한 3도예요. 이것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모든 우리 주변에 말이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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