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갑동이-tvN, 2014

by 리비 :)

감동이 / tvN


바야흐로 '키워드'의 시대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둥의 '힐링'이나 '소통'이 그것이다. 미디어는 스타를 만들어내기 바쁘고, 사회는 키워드를 띄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쏟아지는 키워드 중에서도 '소통.' 사회가 잘 돌아가도록 돕는 윤활유다.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소통이 부재 중인 이 시대, 키워드로 '소통'이 떠오르는 순간 참 진부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 진부한 키워드와, 이미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연쇄살인사건을 버무린 드라마가 의외로 눈길을 끌었다. 바로 [갑동이]다.



수사드라마, 소통을 말하다


이 드라마는 '살인의 추억'의 안방극장 판이다. 일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 잡히지 않은 범인 '갑동이', 그를 따라하는 카피캣의 등장, 그리고 '갑동이'들을 잡으려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아니면, 똘중이 바보야?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정말 몰라?


뭐가 됐는데, (류태오를) 좋아하는게 아니면 된거야? 그럼 진짜 된거냐고. 나는, 류태오가 사람이기를 바랐단 말이야. 짐승의 길을 걷는 놈이 아니기를, 진심 바랐다고. 사람이길 바라는게, 그게 잘못된거야? 좋아하는게 아니면 그냥 된거냐고.


나 바보 맞아. 짐승을 사람으로 봤으니까.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단 말야. 


김지원이 연기한 마지울의 대사다. 류태오, 오마리아, 하무염이 연기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기회를 어디까지, 어떻게 줘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외부와 소통하고 싶어 했던 사이코패스, 마음의 문을 닫은 여자,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소통하지 못했고 세상도 소통을 거부했지만 계속해서 손을 내미는 남자.


브레이크를 찾는 사이코패스, 류태오는 사람들에게서 그 방법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류태오가 처음 관심을 가진 대상은 바로 오마리아.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여자다. 오마리아는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아올린 사람이다. 그에게 브레이크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한 가지에 집착하는 형사, 하무염이 있다.


하무염과 류태오는 상당히 닮은 면이 많다. 하지만 둘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유무다. 소통의 근간은 서로 간의 신뢰다. 사람과 만나서 인사로 나누는 악수의 유래가 서로 무기를 지니지 않았음을 밝히는 행위라는 점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서로가 서로를 해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필요했단 거다. 믿음을 갈망하지만 얻지 못한 류태오는 화를 돋우고 짜증나게 하는 캐릭터지만, 동시에 연민도 가지게 된다. 짐승과 인간의 갈림길에 선 그가 짐승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류태오가 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전반 극 전개는 볌죄 스릴러라기보다는 이런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 후반은 갑동이와 수사진, 갑동이와 갑동이의 기싸움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이 때는 더 수사스릴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극의 초종반 스토리 포인트가 매우 다르다. 그래서 지겹지 않다. 게다가 복선도 나름대로 이해하기 쉽게 여러번 꼼꼼하게 까는 편이다. 여담이지만, 복선과 실마리를 종합해 보면 류태오보다 류태오의 엄마 캐릭터가 참 섬짓하다. 극본이 섬세하게 짜여진만큼 잘못하면 연출이 어려워질 수 있었는데, 시청자 눈높이에서 쉽게 잘 나온 것 같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탄탄해서 좋다. 이준(류태오 역)은 눈매의 매력을 십분 살렸다. 외꺼풀에 길다란 눈매는 힘을 주면 매서운 느낌이지만 웃을 때는 선하고 맑다. 감정조절을 잘하는 류태오 역할에 적격인 눈매다. 극의 중종반부부터 무너지는 역할을 잘 소화했는데, 그 힘의 팔할은 눈빛에서 나온다. 류태오가 극에서 퇴장하는 씬은, 감독이 작정하고 이준을 위해서 만들어준 씬이나 다름없다. 이 비슷한 연기는 예능에서도 봤었는데, 그 때도 눈물이 나올만큼 멋졌었다. 김민정(오마리아 역)은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감정이 잘 드러나는 크고 동그란 눈망울을 오히려 텅 비웠다.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도 도무지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폐쇄적인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꾹꾹 눌러담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극이 진행되어가며 나타나는 변화를 조금씩 내보이다가 결정적인 씬에서만 폭발시킨다. 강약조절이 확실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감초 역할을 내보인 성동일은 에너지를 표출하기보다는 쌓아 눌러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윤상현(하무염 역)은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내세웠다.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게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모든 인물이 다 갑동이냐), 좀 피곤할 때도 있다. 그러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범죄 스릴러보다는 이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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