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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제169회 정기공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

by 리비 :)

도도하고 멋지다. 클래식발레, 그 몸짓 자체가 그렇다. 극도로 정제된 몸의 움직임,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신체활동범위에서 오는 비현실감, 그 와중에 발현하는 얼굴과 손 끝의 감정표현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제169회 2017년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영국의 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에서 보여준 리허설생중계다. 맨하단에 덧붙일 이 영상에서는 모니카 메이슨(Monica Mason) 감독이 숲속의 나쁜 요정 카라보스 역할 데뷔를 앞둔 솔리스트 올리비아 코울리(Olivia Cowley)의 첫 마임 리허설을 전반부에 보여준다. 후반부에는 페어리 배리에이션의 안무 리허설이 나오는데, 귀여운 카라보스도 만나고 싶고, 카나리 페어리 배리에이션이 보고 싶어서 바로 예매를 했다. 


<잠미녀> 하면 오로라에게 축복을 내리는 요정들이 추는 페어리 배리에이션, 열여섯 오로라와 예비 신랑감 네 왕자들이 추는 로즈 아다지오(아, 나도 신랑이 있었으면!), 오로라와 데지레의 결혼식에서 펼쳐지는 디베르티스망이 큰 볼거리지만, 어딘지 귀여운 구석이 잇는 카라보스를 만나러 간 공연이라 1막과 2막 중간에 오로라의 성장 내내 기회를 엿보며 장막을 들췄다 놓길 반복하는 카라보스 모습을 두 손 모으고 좋아했다며.... 어찌나 카라보스가 귀엽던지. 아니 카라보스야, 오로라가 자라는 16년 동안 궁에서 요리조리 그렇게 오로라 지켜보고 있었니. (카라보스 귀욥...)


여하튼 각설하고, 카라보스는 발레리노가 연기하기도 하고 발레리나가 연기하기도 한단다. 안무가별 버전을 공부할 정도의 눈썰미가 못되는데, 원작안무의 마리우스 프티파 버전은 발레리노 카라보스를, 루돌프 누예레프 버전에선 발레리나 카라보스를, 마르시아 하이데 버전은 발레리노 카라보스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카라보스를 남자가 하는 걸로 인식한다는데, 영국 로열발레단과 아래 풀버전을 붙일 파리 국립발레단은 누예레프 버전이다. 국립발레단은 작년에 하이데 버전으로 공연폭을 한층 넓혔다고 한다. 이번에 내가 본 버전도 하이데 버전인데, 마임이 많이 안 나오는 대신에 속도감있게 전개되어 임팩트가 강하다. 이야기가 눈 깜짝할새 지나간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발레리노 카라보스는 힘차고 빠르다. 드레스를 입은 발레리나 카라보스에 비해 온 몸에 검은 천을 두르고 카라보스보이들과 함께 뛰어다며 기운을 휘날리는 김기완 솔리스트의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역시 멋지다,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런데 라일락 페어리와 호흡을 맞추는 씬에서는 약간은 카라보스와 라일락 페어리가 투닥투닥하는 느낌이 든달까... 카라보스라는 캐릭터가 마냥 귀엽게 보이는 까닭에 그럴 수도 있고, 남자 무용가가 연기하는 카라보스라는 선입견이 생겨서 괜히 '남자 카라보스랑 여자 라일락 페어리랑 대결구도가 되겠어!'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게, 데지레랑은 투닥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제대로 제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발레 공연이라 그런지 눈이 시리게 예쁜 동작 때문에 눈물이 살짝 났다. 화이트캣과 장화신은 고양이 커플은 어찌나 고양이 그 자체던지. 새침하게 고양이를 쳐내는 화이트캣이 정말 귀여웠다며. 카나리 페어리도 참 이쁘고...


하지만 의외의 씬스틸러는 김명규 발레리노. 나오는지 모르고 갔는데, 카라보스 보이 중 하나가 점프할 때 몸이 뜨는 각도가 어디서 많이 본 각도다 싶은 인물이 있었다. 게다가 알리바바와 포 쥬얼스 파트에서도 몸 움직임이 저건 명규리노 느낌인데! 하고 확신이 들 정도였다. 알고보니 그 인물이 명규리노가 맞았습니다... 이번 시즌이 명규리노의 <잠미녀> 알리바바 데뷔였을텐데 감사히 잘 봤습니다. 건강하게 승승장구하면서 오래오래 이쁜 춤 많이 보여주세요.


파리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사실 공연을 본 날 무대 상태가 별로였던지 무용수들이 살짝 실수를 하기도 했었고,오케스트라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그걸 두둔할 필요는 없지만 이 또한 공연의 묘미가 아니던가. 여러모르 정이 가고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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