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LDP무용단] 제17회 정기공연

by 리비 :)

공연 흐름에 대한 스포일러성 서술 포함 유의

이하, 공연내용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I was admiring her through a series precision of cut mirrors>

안무: 에릭 랑게(Eric Languet)

출연: 류진욱, 장원호, 강혁, 이정민, 정건, 전우상, 임샛별, 김보람, 김수인, 정록이, 이주희, 양지연, 한윤주

2부 <Look Look>

안무: 김동규

출연: 천종원, 이선태, 김성현, 윤나라, 임종경, 전우상, 장지호, 임샛별, 양지연, 정록이, 신호영, 이홍


사진을 이렇게 찍어왔지만, 얘가 포토월입니다.


내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이번 LDP의 정기공연은 지금 시대를 향한 안무가와 무용가들의 애정어린 관찰보고서였다.


현대무용은 난해하다. 동작을 봐도 어렵고, 해석하려고 들면 헷갈린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공연장에 발을 내디뎠다. 모르겠으면 그냥 무용가의 몸짓만 눈에 담고 와야지. 저 동작을 저정도로 정확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그 땀방울의 흐름만 봐야지. 하지만 공연을 보며 그런 생각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인간의 갈망, 그리고 욕망에 대해서 그렸다는 에릭 랑게의 작품은 옴니버스식 구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이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씬은 십센치의 <스토커>가 오버랩되면서 두 여성무용가는 방 안에서 춤을 추고, 한 무리의 무용가가 방 밖에서 소리지르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나.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끊임없이 스타를 만들어내려 하는 매체의 활동, 자극적인 것을 좇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누군가에게 열광하고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흘리는 가벼운 속성, 다 방송매체가 알게 모르게 취사선택하는 우리의 모습 아닌가. 그러나 맵고 짠 음식 먹으면 한 잔의 물을 찾듯이, 맞다. 나도 알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러니 스스로나 잘하면 되는 문제다.


이 작품은 에릭 랑게 안무가가 빌 넬슨의 시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짠 작품이라고 한다. 아래는 해당 시의 전문. 영시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본 거라 원래 문단을 제대로 적었는지 확인이 어려워, 독해 편의를 위해 행간배열을 제멋대로 변경했다.


-- Three Metrics -- (written by Bill Nelson)

And in a triangle of love,  

the hair fell in love with  the girl, who fell in love with the skin,

who was still getting over a crush on an eye,

who was, by all accounts, infatuated with everything.

That is, until the boy entered the scene with his oblate spheroid.  

By plotting wine on the x axis, lust on the y axis,

we can see clearly where the hyperbola of the knees touch.  

I was admiring her through a series of precision cut mirrors.

There is a certain convexity to this situation she said.  

Then she popped open  her umbrella and another perfectly formed umbrella fell out. 


사실, 일단 우리말로도 시는 잘 이해는 못 하는데 영시를 이해할리 만무하다. (애시당초 편구면이라는 우리말도 처음 들어보는데.) 아무리 저 문장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도, 에릭 랑게 안무가의 작품은 완전히 다른 뿌리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여담인데, 이 작품에서 정건 무용가의 대사가 참 귀엽고, 미안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 킬링파트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어깨에 힘을 제대로 빼고 연기한 강혁 무용가도 멋있었고, 등장부터 이목을 사로 잡은 김보람 무용가도 멋졌다.


다음으로 이어진 2부 공연은 LDP의 단장 김동규 안무가의 <Look Look>이다. 이 작품은 색색깔의 오브제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각양 각색의 옷가지(인지 천인지) 속에 역시 색색의 옷을 입은 무용가들이 섞여 있으니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은 무용가들의 움직임 그 자체가 가장 크게 보였다. 다른 동작을 하던 무용가가 페어로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기도 하고, 강압적으로 다른 무용가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전원이 군무를 추는 때는 같은 동작을 다르게 해석하는 무용가가 섞여 있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동작도 우리 모습이긴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고, 때로는 강요하고, 가끔은 일탈했던 기억이 다들 한 번은 있을법하다.


<Look Look>은 화려한 색채나 패턴의 상하의 의상을 입은 무용가들이 등장한다. 붉은 정장을 입은 이선태 무용가와 화려한 패턴의 임샛별 무용가가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는 듯한 동작을 선보일 때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화려한 색채와 패턴 속에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노톤의 옷을 입은 여성 무용가다. 톤다운된 회녹색의 정장을 입은 남성 무용가(아마도 천종원 무용가, 틀리면 죄송해요;; 저 머리 나빠요.)도 있지만, 완전히 재킷이 없이 회색 조끼를 입은 여성 무용가(정록이 무용가님 맞으세요...? ㅠㅠ 안면인식에 어려움이 있어 죄송해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이 회색 조끼의 여성 무용가는 막이 내려갈 즈음 다른 무용가들의 재킷을 빼앗아 자기가 걸치고 다닌다. 그리고 다른 무용가들은 움직이지 않고 회색 조끼의 여성무용가만이 움직이며 막이 내려온다.


글쎄, <Look Look>이라, 보고 보여지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었지만, 전반적으로 이 이야기는 인간의 개성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각자 다채로운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어울려 살기에 특이하게 볼 필요 없는 세상. 남을 보고, 따라하고, 남에게 내 것을 강요하고, 일률적으로 만드려 해도 약간 튀어나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개성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내 것이 없이 타인의 것을 따라하려는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가 모두의 개성을 조금씩 훔쳐내면 몰개성한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도록 만드는 이야기였다.


묘한 매력을 지니고 길다란 팔다리로 시원시원한 움직임을 보여준 신호영 무용가, 넘치는 파워와 디테일이 멋진 정록이 무용가, 극적이고 유연한 움직임과 표정을 보여준 임샛별 무용가 모두 멋졌다. 여성 무용가들의 멋진 모습에 손바닥 터지게 박수를 보냅니다.


1부와 2부의 극에 대한 되짚어보기를 마무리하며, 나는 정말 불편한 단어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소통'이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상처 받는 것도 무섭고, 상처 주는 것도 무섭고, 다들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도둑이 제발저린 일이겠으나, LDP의 이번 공연은 그 감정들을 찔러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객석까지 전달되는 무용가들의 에너지가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해 보자고 하는 제언임을 전달한다. 무용가와 안무가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이 공연을 만들어냈다고 믿고 싶다.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안무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함에 미안하다. 의도하신 바와 많이 차이날 수도 있는거니까. 하지만 예술가의 품을 떠나 대중을 만난 작품은 더이상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끄러움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사실 제작비 정산하다가 리뷰. 아무래도 예산부족 각이네. 쩝. 뭐, 내가 직접 제작하는 것도 아니지만 편성은 내가 하는 거니까 일단 제발 이번 프로그램 잘 나왔으면 좋겠고, 올해에 기획안 써놓은 무용 프로그램 하나는 제발 제작 했으면 좋겠고. 일하기 싫을 때, 이 작품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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