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박열 | 2017

by 리비 :)

스포일러 포함


아침 뉴스에 일본 총리가 한마디 했다는 내용이 뜨는 날에는 공항철도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헤매고 있어도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휙 지나가버린다. 어차피 대한민국에 일본어하는 사람이야 수두룩하고, 내가 꼭 도와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한국에서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헤매는 일본인 가족에게 말을 건넸다. 시비를 다툴 것은 일본 내각이지 일본 민중이 아니라는 박열의 말이 생각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성은 이해하나 감성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이따금 부끄럽다. 박열 의사를 연기한 이제훈 배우의 입에서 "일본 권력과 싸우지 일본 민중과 싸우냐"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도 그래서 부끄러웠다. 같은 이유에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고 명시한다. 사실만으로 충분히 극적인 삶을 살았단 두 인물 '박열'과 '후미코'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었을 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인력거꾼을 하며 항일운동을 하는 박열과 그의 시를 읽고 정신을 공유한 일본 여인 후미코는 전우이자 연인으로 발전한다. 한편, 관동대지진 이후 괴소문에 대응해 조직된 일본자경단이 6,000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일본내각은 박열을 위시한 불령사를 지목해 대역사건을 꾸며내기에 이른다. 박열은 이같은 일본내각의 계략을 깨닫고, 이를 역이용해 일본의 만행과 그 뿌리를 뒤흔들기 위해 재판에 나선다.



이제훈의 발칙한 표정이 포스터를 보며 내가 기대한 것은 설익음이다.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 일본을 향한 한국 국민의 뿌리깊은 유감? 그럴 수 있으나 나는 영화 자체에서 그런 점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 영화의 목적은 일본이 과거에 자행한 행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 내각이 군국주의 아래 저지른 말도 안 되는 폭력과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변명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변명의 중앙에 있었고 모든 부도덕한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했던 존재, 일본 천황을 정면으로 부정했던 아나키스트 박열과 후미코에 대해 다룬다. 이 둘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신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천황을 위한 모든 행동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도 안 되는 민족주의가 만연했던 당시 일본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 하지만 장난기넘치고 내세울 것 없음에도 묘하게 당당하다. 이런 모습은 딱 청춘과 닮아 있다. 하지만 내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과연 타국의 거대한 국가권력의 허구를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며, 그 허구 속에 비도덕한 부분을 들춰내어 국제사회를 마주보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어려운 일을 이 설익은 젊음은 해낸다. 목숨을 담보 삼아, 전세계를 대상으로, 제국의 면전에서, 자국의 불신을 뚫고 말이다. 소위 요즘 말하는 스펙으로 따지면 이들은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다. 아버지는 글을 가르칠 생각이 없었고, 어머니는 글을 몰랐던 가정에서 조선으로 식모살이를 온 후미코, 지금의 고등학생 또래인 박열. 그들이 했던 행동을 빼면 이들은 특이할 것 없는 청춘에 불과하다. 그런 그들이 비폭력 만세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했던 일본 내각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이 모든 업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호되게 지적한다. 특별하지 않은 설익은 존재가 오히려 사리를 꿰뚫어보고 있는 셈이다.


무모하고 허황된 꿈을 좀 꾸면 어떤가 싶다. 그런 점이 때로 큰 물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점이 하찮은 청춘의 아름다움 아니던가. 박열과 후미코의 패기를 그린 이 영화는 반일영화가 아니라 청춘물인 셈이다. 감독이 소재에 비해 가볍게 유머코드를 섞은 이유도 진흙투성이었지만 아름다웠던 이들의 인생에 시선을 끌어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비장한 톤으로 애국심을 자극하지 않는 시대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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