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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홈커밍 | 2017

by 리비 :)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 너무 좋아 ㅠㅠ 


나에게 마블과 소니의 차이점은 안도와 실망의 중간 쯤이다. 어벤저스의 마블과 엑스맨의 소니. 마블은 판타지에 현실을 섞고, 소니는 현실에 판타지를 얹는다. 다 잘 될 것같은 밝은 환상의 세계에서도 좌절하고 갈등을 겪는 마블의 시리즈를 볼 때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반면, 히어로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종국엔 사건이 잘 해결되는 소니의 시리즈를 보면 엇나가고 싶은 반항심이 삐죽 고개를 든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활약하지 못했던 스파이더맨이 마블로 건너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쉴새없이 깐족이는 모습마저 짠한 스파이더맨이 상큼발랄한 마블의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했던 팬들이 적지는 않았을 터다.


스파이더맨(피터 파커)의 구직활동기 정도로 요약하고 싶은 이 영화는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탄생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풀지 않는다. 대신 본론으로 바로 넘어간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팀 아이언맨의 조커로 출장한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에게 아벤저스의 일원으로 일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언맨(토니스타크)은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라며 선을 긋는다. 새내기 영웅 피터 파커는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타인을 돕고 싶은 선량한 심상이 뒤섞여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어떤 사건과 마주한다.



첫 출근, 뭐라도 해야겠다는 묘한 압박감과 빨리 쩜오인분(사실 나는 출근 첫 날 0.5인분의 업무를 감당하면 엄청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한다)을 해야한다는 긴장감으로 실수를 저지르며 눈치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것을 기대한 사람은 없었고, 보통은 분위기파악하면서 뒤치닥거리할 일만 만들지 말라는 마음이었을텐데 말이다. 그 때의 기억을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보며 떠올린다.


빨리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고 싶어 매일매일 수퍼히어로 일과를 보고하는 피터 파커는 스파이더맨임을 혹은 스파이더맨과 친분이 있음을 주변에 자랑하라는 부추김도 잘 이겨낸다. 좋아하는 여학우(...표현이 올드;;)에게도 뻥긋하지 않는다. 히어로로서의 공명심을 이겨낼 줄 아는 정신을 갖췄지만 수퍼히어로로 활동하다가 경험미숙으로 실수를 저지르고 이를 아이언맨이 수습해주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어른과 소년 중간에 선 스파이더맨에게 토니스타크는 때로는 얄밉게 때로는 포근하게 아버지 역할을 자처한다. 아버지에 대한 경쟁심과 그리움을 가진 그 토니 스타크가 말이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 토양이 되는 셈이다.


시간은 잘 흘러간다. 그리고 설익은 어른의 성장에는 끝이 없다. 언제쯤이면 일인분 몫을 하고 있다고 만족하게 될지 까마득하다. 최선을 다해 달려가자다가 결국에는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치거나 자괴감에 빠질 이유도 없다. 실수하고 다시 배우고, 성장하면 된다. 다만 선한 심상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이 멋진 영웅도 욕심이 앞서 실수하고 지적받으며 성장해 나가고 있지 않나.


여담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 정말 예쁘다. 난 오프닝크레딧-타이틀시퀀스랑 엔딩크레딧 이쁜 영화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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