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검은 사제들 [2015]

by 리비 :)

<검은 사제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힘든 것은 아무래도 종교색, 그리고 두 번째 장벽은 낯선 언어들. 영어, 라틴어, 중국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마자'라거나 '서품'같은 비종교인에게 낯설 수 있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을 극 속에서 설명하려고 들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다들 종교인이고, 심지어 악령에 씌인 아이도 종교를 신실하게 믿었던 아이인데.


출처: 네이버 영화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영화 시작 전에 전반의 스토리를 함축적으로 전달해준다. 디지털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인데, 2시간에 육박하는 이야기를 길어봐야 3분 안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현실을 떠나 가상의 세계로 몰입도를 이끌어 내는 일종의 '관문'이다. 007은 원래 유명하고(<스카이폴> 전에도 영상교재로 007 시리즈는 많이 보곤 했다), 마블 시리즈도 공 많이 들이는 것 같고... 오프닝 시퀀스가 잘 뽑힌 영화는 어딘가 '공이 많이 들어간 영화'처럼 보이는 후광효과도 상당하다.


<검은 사제들>의 오프닝 시퀀스가 가진 목적은 단 하나, '관객이 스토리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자.' 강동원 비주얼과 목소리로 이목을 끌면서 배역과 배우, 영화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을 동시에 풀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바라는 감각적인 영상, 영화 전반에서 보여줄 줄거리에 대한 함의를 줄이더라도, 시작부터 이렇게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는 기대가 된다.


배역들이 연기하는 방향성이 명확하다. 김신부와 최부제는 당연하고, 작은 역할 하나하나가 방향성이 명확하다. 감독이 이전에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를 연출하고 처음으로 직접 장편 각본/연출을 했다던데, 방향성이 흐트러지지 않고 장면 하나하나가 이야기와 상관없는 부분이 없다는 점이 좋다. 보면서 "아, 이 장면은 없어도 될 듯"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건 좀... 싫은데 그런 부분이 없다. 감독의 집중력이 좋다.


게다가 톤도 좋다. 종교 이야기인 것 같지만 결국 주인공은 종교인답지 않은 종교인이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 뿐, 결국은 나와 타인, 나와 타인의 불행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라는 소리다. 내면의 상처와 이를 극복 하려는 우리의 이야기.


그래서 아래 씬을 가장 좋아함.


출처: 네이버 영화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 5,000살 먹은 놈 만나러 가는거야," "도망 갔다드만." 영화를 보면서 좋을 때는 지나가도 될 캐릭터 하나하나가 주인공의 대사 한 줄로(정말 한 마디로) 이야기를 가지게 됐을 때다. 김신부 대사가 멋있는게 많다. 이거랑 또 뭐였더라, "우리만 싸우는 게 아니야"였나... 엄청 많다. 각본이 좋다.


엑소시즘 영화는 많다.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 악령, 그리고 이에 대면하기 위해 강해지는 인간의 이야기는 소설, 영화, 만화로 항상 돌고 도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와중에 <검은 사제들>이 좋은 이유는 EDM과 성가를 적절히 사용하며 '악령' 이야기를 현대 서울에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귀신영화'는 넘쳐 났지만 '엑소시즘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등장한 엑소시즘 영화가 세련된 배우를 입고, 세련된 연출과 음악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살짝살짝 들어가는 깨소금같은 유머감각까지...


세련된 배우라 함은 최부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신부다. 최부제를 포함한 김신부를 말한다.


감정은 스펙트럼같은 거라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 감정의 스펙트럼을 연기로 표현하는 것이 배우다. 김신부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김신부 역의 김윤석이 얼마나 세련된 배우인지 알 수 있다. 긍휼히 여기나 불쌍히 여기지는 않는, 눈 앞의 사람이 겪은 비극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비극이 가볍다고 여기지도 않고 그냥 '그것은 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감정이 없으면 그럴 수 있으나, 김신부도 소녀의 비극에 눈물짓고 혈육을 향한 위협에 몸서리치는 인간이다. 인간임에도 긍휼히 여길 줄 알지만 불쌍하다 보지 않기는 어렵다. 


또 김신부에게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 장미십자회에서 제안하는 것, 2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둘 다 큰 목적은 같았다. 결과도 같았으나 김신부에겐 과정과 중간 목적이 달랐기에 굳이 어렵고 험한 길을 행한다. 이 환상 속의 인물을 김윤석이 그만의 방식으로 풀이해 낸 것.


세련된 비주얼과 좋은 목소리로 화면을 한 눈에 사로잡는 강동원도 훌륭한 배우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에서 스크린 한가득 잡힌 강동원의 눈망울을 보면 억울함과 순둥순둥함이 가득한데, 이번 <검은 사제들>에서 타이트하게 잡힌 강동원의 눈망울은 유약함과 이를 이겨내려는 의기가 가득하다. 삼겹살 집에서 김윤석의 대사 속에 감정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다. 참치 씨의 사슴같은 눈망울은 참치 씨를 사랑스러운 배우로 만드는 제1 요소인 것 같다.


내 나라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누군가가 사경을 헤메는 만월의 밤, 멀리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무색하게 예쁘다. 우리 서울은 어느 날 보면 참 예쁜데, 어느 날은 갑자기 부자된 대도시 느낌이다. 우리나라 영화들은 우리나라를 이쁘게 잘 찍어내지만, 외국 영화들이 로케와서는 내가 보던 서울보다 못 찍는다. 역시 내 나라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예쁜 서울 하니까, 갑자기 <뷰티 인사이드>가 생각나는데... 스토리도 인물도 상관없이 그냥 일상을 예쁘게 찍은 걸 보고 싶으면 이 영화도 괜찮다.)


극 중에 바흐의 칸타타가 나오는데, 이 곡은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가 있도다>다. 바흐의 200~300여 편의 곡 중에서도 예수 재림에 대한 희망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받는 곡인데, 사실 엑소시즘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익숙한 곡일 듯. 우리나라에서만 봐도 이우혁의 <퇴마록> 국내편에 이 곡을 주제로 한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악, 어둠, 눈을 속이는 속임수, 눈 앞의 편리 속에서 눈을 뜨라는 이미지를 대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이 칸타타가 나올 때가 많다.


여하튼, 괜히 스포일러같으니 내용을 다 적지는 않겠으나... 이 영화에는 이 곡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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