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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도시’ 구마모토를 만나다

by 리비 :)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근현대가 숨쉬는 곳,

여유로움이 풍기는 ‘역사의 도시’ 구마모토의 민낯을 만나다.


우리와 멀고도 가깝다. 정치적 이야기가 나오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역사책을 펼쳐도 마찬가지로 멀기만 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야기는 들려온다.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바로 일본 이야기다.


일본경제와 행정의 중심은 도쿄, 그리고 일본 역사의 중심지는 교토다. 일본에 처음 방문한다면 흔히들 찾는 여행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연관있는 이야기를 찾아간다면 눈길은 구마모토로 향한다. 일본의 중심에서 약간 비켜 있어 한적함을 즐길 수 있는 구마모토에서 우리 이야기를 만나보자.


한국의 영혼을 품은 ‘구마모토’


서울에서 1시간 반, 짧은 비행을 거치면 일본 속에 숨은 ‘역사의 도시’ 구마모토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의 도시’를 지향하는 구마모토. 그래선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시내 곳곳을 도는 트램 역시 그 중 하나.


한국과 구마모토는 생각보다 깊은 연관이 있다. 이 곳을 찾는 한국인의 수는 매년 30만 명 이상. 도쿄, 오사카, 교토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숫자다. 방문객이 적지 않은만큼 붐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근처에 온천 휴양지가 많고 도시 자체가 한적함을 담고 있어 여유롭게 관광을 즐기기 좋다. 도쿄나 오사카의 번화함을 피하고 싶다면 찾을만한 도시다.


구마모토에는 우르산마치라는 동네가 있다. ‘마치’는 우리 말로 마을, ‘우르산’은 울산광역시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단어다. 우르산마치는 울산마을로 번역할 수 있는 셈이다.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우르산마치는 우리나라 울산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임진왜란 시 조명연합군에 맞서 일본군이 주둔했던 울산의 지명이  일본으로 옮겨왔다는 설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울산에서 끌려 온 조선인들이 정착한 동네라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모두 우리나라 역사와 연관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지명이 우리나라 울산에서 유래된 덕인지 우르산마치 역 현지 한국어 표기에는 일부 ‘우르산마치’가 아닌 ‘울산마치’로 명시된 곳도 있을 정도다. 조선인들이 터를 잡고 정착하며 만들어진 마을 우르산마치는 구마모토 경제 발전의 중심지였다. 때문에 구마모토에는 조선인을 신(가미)으로 모신 신사도 있다. 한국인의 혼이 구마모토에 서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격동의 시작을 알린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시 중심에 위치한 구마모토 성이다. 이곳 역시 우리나라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구마모토 성은 일본 3대 성(나고야 성,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고 견고하기로 유명하다. 급경사에도 석조가 꼼꼼하게 짜여지며 휘어지는 석벽 때문이다. 침입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성 주변에 조성하는 해자와 함께 구마모토 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다.


구마모토 성 입구에 세워진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동상. 위로 긴 모자는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한 소품이었다.



이 성은 가토 기요마사(가등 청정)가 전쟁터에서 얻은 노하우를 집대성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기요마사는 일본에서 무게감을 가진 인물 중 하나.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정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선봉장에 서 한반도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 때 불안정한 정세와 흉흉한 민심, 여기에 왜란까지 맞물려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임진왜란 당시 기요마사는 울산에 울산학성(울산왜성)을 짓고 조명연합군과 두 번에 걸쳐 울산성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때의 기억은 훗날 구마모토 성 축조에 그대로 반영된다.


울산학성이 위치한 산세는 사면이 고립된 형세를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공성이 힘들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성을 공격하는 측이 충분한 군사를 가지고 있을 때는 성 내부로 통하는 보급로 차단이 쉬웠다.  게다가 울산성 안에는 우물이 없어 식수 확보까지 어려웠다.


때문에 조명연합군이 제2차 울산성 전투 당시 울산학성을 포위하자, 기요마사는 군량과 식수가 부족해 군마의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버텼야 했다. 그 때의 울산성 전투에서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구마모토는 말고기 회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구마모토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말고기 회를 먹는 지역이다.



구마모토 성 주변에는 800그루에 달하는 벚꽃 나무가 심어져 있다. 3~4월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제2차 울산성 전투에서 군량과 식수 확보의 중요성을 절절히 깨달은 기요마사는 일본으로 돌아와 구마모토 성 축조에 들어간다. 성벽을 견고히 쌓아 수성을 쉽게 하는 동시에, 내부에 조성한 120개의 우물, 식용 고구마 줄기로 만든 다다미, 성 내부 심은 은행나무로 군량과 식수 확보에 나섰다. 때문에 구마모토 성 내부에는 식량 확보를 위해 심은 은행나무가 많아 은행성(긴난죠)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마모토 성을 들린다면 120개의 우물과 은행나무, 그리고 내부에서는 다다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 기요마사는 구마모토 성 내부에 은행나무를 심으며 나무들이 다 자랄 때쯤 병란이 일어날 다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 말대로 은행나무가 다 자랄때 쯤 일어난 것이 일본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전투 중 하나인 세이난  전투다. 


일본 근대화 시작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세이난 전투에서 구마모토 성 함락에 실패한다. 구마모토 성 내부의 3,000여 명의 군사가 50여 일에 거쳐 다카모리의 1만 3,000여 명 군사를 막아냈다. 내부에 풍부하게 조성된 군량과 식수는 물론이고 탄탄하게 축조된 성벽 덕이다.


구마모토 성의 성벽은 견고함은 동시에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위로 올라갈수록 수직에 가깝게 만들어져 있어 사람이 기어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성이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같은 탄탄한 성 축조에도 우리 선조들의 손길이 스며있다. 구마모토 성에는 조선의 축조술이 적용돼 있다. 임진왜란 당시 울산에서 끌려온 조선인들은 구마모토 성 축조 당시 기술과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것.


구마모토 성에 왔다면 성 내부의 우물, 성벽을 둘러보고 성 내부의 천수각에도 올라보는 것이 좋다. 천수각에 오르면 구마모토 시내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구마모토 성 자체가 높은 지대에 세워진데다, 구마모토 성을 중심으로 구마모토 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관이 좋다.


구마모토를 가득 채운 곰, ‘쿠마몬’


구마모토는 말고기나 말기름 크림 등이 유명한 도시다. 하지만 정작 대표 캐릭터는 곰이다. 구마모토(웅본)의 구마가 곰 웅(熊)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구마모토 대표 캐릭터 ‘쿠마몬’은 아소 역의 검은 고양이 캐릭터 구로와 함께 규슈 지역을 들리면 꼭 한번 만나게 되는 명물이다. 그 인기는 매우 높아서 일본 인기 고양이 캐릭터 키티만큼이나 유명하다. 성별은 남자, 직업은 공무원, 직위는 구마모토 영업부장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 대접을 받으며 지역행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쿠마몬은 경쟁의식의 발로다. 구마모토가 속해있는 규슈 신칸센 종착역이 가고시마로 정해지자 지역 홍보를 위해 만들게 된 캐릭터다.


당초 구마모토는 명확하지 않은 지역 이미지와 높지 않은 인지도가 고민이었다. 구마모토 지역 홍보 프로젝트의 로고 디자인을 맡았던 미즈노 마나부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고, 구마모토는 예상에 없었지만 캐릭터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진 쿠마몬은 2010년 발표되자마자 인기를 끌게 된다.


구마모토 관광지 어디서든 쿠마몬을 주제로 한 컵, 텀블러, 라면, 생수, 술, 과자, 인형, 캐릭터 손수건, 안경닦이, 지갑 등 캐릭터가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일본 유명 호텔은 기간 한정으로 쿠마몬 테마룸을 만들기도 하며, 어린이들이 쉽게 함께할 수 있는 쿠마몬 체조까지 나와 있다.


쿠마몬의 구체적인 일정은 쿠마몬 공식 홈페이지(http://kumamon-official.jp)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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