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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선거권, 세금, 그리고 당신

by 리비 :)

이따금 헌법 조항을 마주할 때면 '이게 활자들이 정말 모든 법률 체계 위에 군림하는 최상위 법이 맞나' 싶을 정도로 추상적이다. 하지만 한 줄 한 줄이 담고 있는 뜻이 참 커서 이 이상 구체화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그들의 권리와 의무, 책임에 대해 담고 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가 체제에 맞는 3부(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역할, 경제 체계 등에 대해 서술하는데, 먼 듯 가까운 듯 한 내용이다. 

뜬금없이 헌법을 들춰본 이유는 '국민에게 선거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서다.

얼마 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얻은 한 분이 모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녀에게 '세금을 내지 않으니 투표권은 없는 것 아니겠냐'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실제 코멘트가 그러했는지는 내가 그 인터뷰 자리에 가 있지 않았으니 모르겠고, 그냥 '선거권은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일단 선거권을 가지려면 우리나라 국민이어야 한다. 이런 경우 추상적인 답은 보통 헌법에 있다. 헌법의 2조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고 서술한다. '되는'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난 날 때부터 한국인이던데?'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계법인 국적법 2조에는 출생에 의한 국적 취득에 대해 정하고 있다. 여하튼 국적법을 대강 훑어보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하나가 대한민국 국적이거나, 법무부 장관이 귀화를 허가한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된단다.

물론 국민으로 법의 보호를 받게 되는 대상을 해당 법에서 모두 정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현재 법 적용을 필요로 하며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A가 부모 모두 분명하지 않고 국적도 없는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지도 확실하지 않지 않은 경우는 모르겠다는 거다. 이건 판례를 찾아봐야 할텐데, 그런건 법 전문가(판사, 변호사, 검사)나 법학자에게 문의하는 게 빠르다.

위의 조건에 부합해 우리나라 국민이 되는 경우, 기본권을 보장받는다. 헌법 상 기본권이 명시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헌법에 명시되지 않아도 국가는 내 기본권을 지나치게 간섭할 수 없다. 이 역시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다.(37조)

당연한 말이지만, 헌법은 기본권을 보장한다. '기본권'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일어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나왔다. 이는 유럽법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확실치는 않지만, 민법 성격 상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륙법 체계를 따른다. 기본권에 대해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해석이 엄청 상이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여하튼 프랑스 인권 선언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다. 모든 권리의 제한은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세금은 그 이후 문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데는 돈이 든다. 이런 행정 등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이 바로 조세다. 세금은 개인 별로 능력에 따라 부담한다. 세금을 내지 않았으니 기본권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그 기본권 중 하나가 바로 투표권이다.

이쯤해서 글의 시작에서 예로 든 '세금을 내지 않으니 투표권은 없는 것 아니겠냐'는 발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요지는 이해가 간다.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이라면 누구나 내야 하는게 세금이라는 뜻일테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려 해도,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냥 무식하게 따지더라도 자녀가 세금을 안 내지는 않는다. 소비에는 간접세가 포함돼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소비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세금을 내는 셈이다. '투표세'라는 세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 행정부가 돌아가는데 모든 국민은 일정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세금 안 낸 투표자는 무임승차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 또한 문제다. 무임승차자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빈번하게 드는 예가 바로 국방 서비스다. 세금을 안 낸다고 국방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그 비용이 더 많이 든다. 투표도 마찬가지일테다.

개인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가도 그렇다. 세금 납부 여부가 투표 자격과 관련지어져서는 안 된다.

1인 1표. 이 말은 투표자의 세금 납부 금액(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서 같은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녀가 세금 낼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는 지식인의 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려는 민주주의 정신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

여하튼 여차저차, 이 분의 워딩을 그대로 들은게 아니니 뭐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말 그대로는 참 걱정스러운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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