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다크나이트라이즈 [2012]

by 리비 :)

스포일러 있음

일단 그래픽노블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만화책은 김전일, 코난 밖에 없고, 그나마 코난도 60권부터는 안 읽었다.


딱히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최근의 히어로물은 거의 다 본 것 같긴 하지만... 판타스틱포 시리즈도 다 봤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을 했을 때는 다 봤고, 다크 나이트 시리즈도 다 보고...ㅡ_ㅡ 영화를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어쩌다가 다 본지는 모르겠네.

심지어 나는 배트맨은 싫어한다.

난 양서류, 파충류, 쥐가 진짜 싫은데, 배트맨은 박쥐잖아. ㅡ_ㅡ 왜 이래, 나 햄스터도 싫어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재미있게 봤다. 심지어 이번 작품에는 조셉이 나와...ㅜㅜ

내 기억 속의 앤 해서웨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데'의 사이즈 2같은 6이다. 그런데 캣우먼 역으로 열연했다. 일단 입이 덜 부각되어서 이쁘게 잘 나왔다. 게다가 자선파티에 참석해서 범행대상을 물색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특정 이미지를 가진 도둑이라니, 왜 눈망울이 크고 시원시원한 마스크의 앤 해서웨이를 캐스팅했는지 내용을 보니 좀 이해가 갔다. 퇴폐적이고 불량하지만 이미지가 맑기도 한, 선과 악을 알 수 없었지만 한 쪽으로 정리가 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였다.


모래 위에 집을 짓다


다크나이트라는 시리즈의 영화 한 편은 한 단어로 축약할만한 메시지가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사상누각' 정도가 떠올랐다.


다크나이트에서 하비덴트의 죽음과 거짓 위에 정의가 세워졌다. 경찰청장의 가슴에는 진실을 밝히려는 서신이 간직되었다. 이게 진짜 정의일까? 영화는 이전에 남겼던 물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감형 없는 옥살이를 해야 하는 감옥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남성과 여성을 섞어서 구금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던 상관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서술이 펼쳐졌다. 정의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은 어떤 대우를 받든지 상관없다는 정의가 진짜 정의일까? 합당한 벌을 통제된 환경에서 정해진만큼 받는 것이 아닌, 감금 후 무관심이 진짜 정의인 것일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사건은 예상된 문제였다. 거짓 위에 세워진 정의는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처하는 감독의 해석도 재미있었다. 마치 영화 외적인 부분을 염두에 둔 듯, 죽음을 두려훠하지 않는 배트맨의 특성을 다시 언급한 것이다. 부모님을 범죄로 여읜, 범죄자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범죄자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던 아버지의 그림자로 인해 죽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브루스 웨인은, 어둠의 사도로 훈련받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잃어버리게 된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정말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서 배트맨은 거친 고담 시에서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뒷골목에 뛰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넘어질 것이 무서워서 걷지도 못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일단 걷기 시작하면, 넘어질 것이 무서운 사람은 넘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한 번 넘어져 본 사람은 무릎이 까졌던 기억을 되살려 다음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감각을 쓴다. 어차피 삶은 달리기를 강요받기 마련이다. 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자주 넘어지는 사람보다는 넘어질 것이 두려워서라도 자주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더 빨리 결승점에 다다른다.

우리 엄마가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말되 실패를 부정하지도 말랬엉! (유_유)


죽음은 생명체의 숙명이다. 특히 인간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성적인 자각을 하는 동물이다. 동물이 죽음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의 사후세계에 대한 인지가 확인된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생각은 확인해 본 적이 없으니 모르지!) 죽음은 인간임을 확인하는 최후의 선인 셈이다.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부정하는 배트맨이 어떻게 인간의 강한 의지를 발휘할 수 있으며, 인간사회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부정하는 사람보다 그 두려움을 껴안은 사람이 더 강하게 일어설 수 있다는 조언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배트맨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약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껴안은 채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 영화의 어조를 감안하면, 이전의 배트맨과 똑같이 죽음을 바탕에 깐 채 삶에 대한 원동이 없는 상태로 일을 도모했던 베인과 테이트가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반전은 그냥 하나의 액세서리일 뿐이다. 딱히 놀라운 종류의 것도 아니고, 주시해야하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이 메시지는 너무나 긴 시간동안 모든 이야기의 밑바닥에 숨어서 진행된다. 그래서 이런 맥락을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집사인 알프레드와 웨인의 대화를 통해 다시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부정하는 웨인에게 알프레드는 자신의 거짓됨을 고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것을 말한다. 하지만 웨인은 알프레드의 말을 거부하고 떠나가라고 명령한다.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트맨이 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 그는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알프레드 앞에 보인다. 알프레드의 거짓에 대한 웨인의 용서이자, 알프레드의 삶에 대한 조언이 옳았음을 시인하는 장면이다. 해피엔딩에 대한 헐리우드 특유의 강박관념이란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위한 장면은 아닌 것 같다.


결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쌓은 삶도 사상누각이고, 거짓이나 불의 위에 쌓은 정의도 사상누각이라는거다.


오락영화에 자연스럽게 녹힌 감독의 죽음과 정의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음악도 굉장히 좋았다. 인셉션처럼 음악이 귀에 쏘옥 들어온다.


화면은 인셉션처럼 스타일리시한 것은 아니다. 스토리에 실려있는 힘이 있었으니 굳이 화면을 인상깊게 뽑아낼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화면이 쉽지는 않다. 자극적인 양념이 없고 현실적일 뿐이다. 인셉션은 스토리가 흥미롭고 영화의 사실을 추리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오히려 큰 그림 속에 숨긴 메시지는 약했다. 또 꿈 속이라는 극 중 배경 때문에 화면이 좀 감각적으로 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같은 감독이어도 극본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둘 다 흥미로운 영화임은 틀림없다.


오랜만에 즐거운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다. ㅎㅎ 스파이더맨도 보고 싶었는데, 결국 배트맨만 보는구만!


블로그의 정보

심심해, 리비

리비 :)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