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우리의 20세기 20th Century Women | 2017

by 리비 :)

스포일러 포함

별로 스포일러는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이쯤 되면 거의 습관처럼 쓰는 듯.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고 싶은 부분은 없다. 물론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사회적 주도권이 전반적으로 남성에게 있다는 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의 주도권이 남성에게 있다는 사실에 항거하는 것보다 내 선택이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산타바바라에 살고 있는 55세 도로시아는 이혼하고 17세 사춘기 외동아들 제이미를 키우는 싱글맘. 쉐어하우스(하숙집?)를 운영하고 있는 도로시아와 제이미는 히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자동차 수리공으로 살고 있는 윌리엄, 자궁경부암 투병 중인 24세 여성 사진가 애비와 동거 중이다. 그리고 제이미에게는 매일밤 말 그대로 잠을 청하러 창문을 넘어오는 17세 여사친 줄리가 있다.


영화에서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를 크게 다룬다. 일견 가족영화같은 스토리지만 진짜 시각은 도로시아, 애비, 그리고 줄리가 겪은 빠른 사회변화와 그 속에서 변신하는 여자들을 향한다.


굳이 줄거리에 여성 등장인물들의 나이를 적은데는 이유가 있다. 55세, 24세, 17세, 고등학교 졸업을 눈 앞에 둔 17세 여고생, 대학 졸업하고 흔들리는 24세 사회 초년생, 그리고 삶의 황혼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55세. 한 인간의 타임라인에서 봐도 의미가 있는 순간들이다. 


지금 한 시점에서 보는 17세, 24세, 55세 여성은 어떤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55세가 보는 17세와 24세는 매한가지 감당하기 어렵게 진보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다. 24세가 보는 17세는 어느 정도 가치관을 공유하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 등장인물들은 다들 사회가 바라는 '뭔가'에 쫓기는 마음이 조금씩은 있고, 세대별로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당장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재생산 역할-생물학적 재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이 있겠지만, 지금은 생물학적 재생산에 한해-에 대한 여성 등장인물 3인의 대응은 각각 다르다. 맞다. 이 시대는 2세대 페미니즘이 득세하던 시대다. 그리고 다시 맞다. '재생산'이라는 단어, 의도적으로 쓴거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감의 위기 Crisis of Confidence>를 연설하고, 전쟁이 끝나고 다시 다른 전쟁이 시작됐으며, 히피문화가 바람처럼 유행하다가 시간이 흘러 펑크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80년대에 나고 자란 내 또래 세대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삶의 방식에 공감할 바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극의 종반, 도로시아가 아들을 앞에 두고 하는 이야기에서 답을 찾는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보통의 삶인 줄 알았는데 쫓기듯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는 도로시아의 말에서,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를 넘어 현재에 이른 페미니즘의 흐름을 본다면 과장인가.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떠나, 각각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찾자는게 젠더학의 목표 아닐까? 


17세 사춘기 아들 제이미는 엄마에게 슬쩍 묻는다. "엄마 행복해?" 55세의 싱글맘 도로시아는 17세 아들 제이미에게 털어놓는다. "나는 네가 나보다 행복하길 바랐어."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데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싶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여전히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싶은 부분은 없다. 과연 이 선택이 나에게 행복할 것인가. 나는 이 선택을 평생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그저 내 선택이 이대로도 나에게 괜찮을지가 궁금할 뿐이다. 사족이긴 한데, 지금까지 고무줄을 당기며 싸워왔던 이들의 열매를 공짜로 취하는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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