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2017.10.02 엄마에 대한 단상

by 리비 :)

1. 

"가이드 말 잘 듣고 건강하게만 다녀 와!"

7박 9일의 추석여행길. 엄마와 아빠를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눈시울이 시큰했다. 가을에 청승이다!


2.

우리 엄마도 나 초등학교 입학시키고 오는 길에 눈시울이 시큰했단다.


엄마는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존재감은 엄청났는데, 일단 옷차림이 그랬다. 대학시절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지라 패션감각이 남다른 엄마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매년 내 눈에 '가장 예쁜 엄마'였다. 내 성적이 엄마의 존재감에 못 미쳐서, 나는 초등학교 내내 공개수업 때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언제 손들고 발표를 해서 엄마한테 눈도장을 찍어야 하지'를 걱정했다. 내내 발표 한 번 안 하다가 그 날만 손을 번쩍번쩍 드는 거다. 담임 선생님들은 얼마나 그런 상꼬맹이가 웃겼을까?


3.

나는 갈 길이 먼데 안 가겠다고 뒷발로 버티는 망아지같은 애 였고, 우리 엄마는 그 망아지를 달래고 때리고 얼러가며 길로 모는 기수였다. 엄마 교육 철학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최소한 공부 안했다는 사실 때문에 쓴맛 보는 일이 없는 수준까지 부모가 끌어준다는 것이었다. 망아지가 이런 엄마를 만나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주변 사람 중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가 상꼬맹이인 나를 데리고 이화여대를 둘러보며 '여기가 니가 다닐 학교'라고 캠퍼스 투어를 시켰다고. 정작 우리 엄마는 "그랬으면 기억을 할텐데 기억이 안 나"라며 "이왕이면 연고대나 서울대를 가지 왜 하필 이대겠어"라고도 덧붙이신다. 그러게, 진짜 투어를 갔으면 연고대를 갔겠지. 동감이다.


4.

여하튼 엄마의 예언(?) 때문인지(...) 덕분인지(......) 이대에 입학했다. 1학년 때 들은 교양 심리학 수업 내 엄마와 아이의 애착이론에 대한 강의 이야기다.


안정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나중에 사회에서도 잘 적응하고, 안정애착은 아이가 신호를 보낼 때 보호자가 일관되고 신속하게 응답하는 경우 만들어지는데, 보통 보호자의 행동은 이전 세대로부터 학습되는 것이라 애착유형은 전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설명 끝에 "여자는 사회생활을 줄이라거나, 애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에게 완전한 애정을 보여주라는 것"이라며 "건강한 사회의 기반은 건강한 가정이고, 그 기반은 엄마며, 여러분들의 상당수가 미래엔 엄마가 될 거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덧붙이셨다.


우리 엄마는 생각해보면 생후6개월을 넘어 생후32년이 될 때까지 신호를 보내면 참 잘 응답하는 엄마다.


5.

요즘들어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우리 엄마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 말이다.


자동차에서 내리며 "다녀오겠다"고 큰소리로 인사하는 아이한테 눈길도 안 주고 대답도 안 하는 엄마, 횡단보도 앞에서 뛰어나가려고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관심도 없는 엄마, 아이가 엄마한테 계속해서 말을 거는데 싹 무시하는 엄마를 볼 때다. '우리 엄마는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저런 적이 없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번 응대해주며 아이 키우는게 쉽지는 않다고 듣기는 들었다. 우리 엄마도 참 짜증나고 대답하기 싫을 때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더 붙이자면, 갓난아기 때부터 엄청나게 말을 시키고 옹알거리면 그걸 대답삼아 또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한다.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이건 빨간 색이고 이건 노란 색이야~ 어떤 색이 좋아?' 이런 이야기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 듣지도 못하는 애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냐며 묻기도 했다고. 엄마 대답이 걸작이다. "니 눈 보면 다 알아 듣는 거 같던데." 대단한 엄마다.


6.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순방을 떠난 이 여사님께서는 어쩐 일로 4시간에 한 번씩 안부문자 없이 하루 한 번의 안부만 물으시며 잘 계시는 것 같다. 사실 매 시간 문자하며 빨리 한국 오고 싶다고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직 남은 걱정거리는 많은 걸 보면 자주 여행가시게 두면 안 될 듯 하다.


그게 아니면 엄마, 아빠, 정말 딸래미가 보디가드 붙여서 여행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셔야겠어요. 제가 매일 신문 세계 면 보느라 아침이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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